Home 대전문화 70년 골목을 지켜온 이발소, 소제동 ‘대창이용원’ 이야기

70년 골목을 지켜온 이발소, 소제동 ‘대창이용원’ 이야기

(대전=저널큐) 조재원 기자 = 대전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인근 골목에는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이발소가 있다.
‘대창이용원’은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지역 주민들의 머리를 다듬으며 동네의 변화를 함께 지켜본 공간이다.
빠르게 재개발이 진행되고 카페와 문화공간이 들어선 소제동이지만, 이곳만큼은 예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용원을 운영하는 이종완 선생은 열네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이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당시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엄격했고, 실수를 하면 ‘바리깡’으로 머리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버거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수련의 시간을 견뎌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이발사 면허를 취득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열었다.
‘대창이용원’이라는 상호에는 아버지의 바람이 담겼다.
‘큰 대(大)’와 ‘창성할 창(昌)’ 자를 써서 아들이 크게 번창하길 기원하는 뜻이었다.
한학에 밝았던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은 지금까지도 간판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게가 자리한 소제동은 한때 대전역 인근 철도 종사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단정한 용모를 유지해야 했던 역무원들과 인근 학교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단골이 됐다.
전성기에는 다섯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할 만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발소 안에는 늘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오갔다.

가정을 꾸린 뒤에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더욱 성실하게 일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가위를 들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자녀들 역시 각자의 진로를 찾아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화려함보다 꾸준함을 택했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삶의 기반이 됐다.

이종완 선생은 지금도 힘들었던 수습 시절을 가장 값진 경험으로 꼽는다.
혹독했던 시간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도 “지금의 어려움이 훗날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말을 자주 전한다.

급격히 변하는 도시 풍경 속에서도 ‘대창이용원’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제동 골목에서 들려오는 가위 소리는 단순한 이발 작업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과 지역의 역사를 함께 다듬어 온 시간의 울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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